2007/12/0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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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영화였다.
'마음대로 그려 보세요.'라는 주문을 받고 그린 그림 같은 정사씬과 더불어서  
이 영화의 핵심은 목숨까지 올인한 도박 한 판을 보는 것과 같은 감동이다.
대아(大我)든, 소아(小我)든, 두 남녀는 어쨌든 상대방보다 우선하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시종 아슬아슬한 접전을 벌인다.

승부를 결정짓는 관건은 두 가지다.
경계를 풀지 말 것, 그리고
욕망에 굴복하지 말 것

자신의 경계는 풀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경계는 풀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상대방의 욕망을 이용해야 한다.

왕치아즈(탕웨이역)는 자신을 숨기며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자신이 이용하려던 상대의 욕망과 함께 자라난 그녀 자신의 욕망 때문에 결국 게임에서 지고 만다.  

열정과 사랑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 없었던 왕치아즈는 패배한다.
로맨티스트의 죽음인 것이다.
그녀와 함께 낭만적인 열정에 휩싸여 운동을 시작했던 애송이 동지들도 모두 그녀와 함께 처형당한다.
이것이 현실의 모습이다.
(혁명의 과정에서 누구보다 냉정했던 우영감만이 일본군의 포위망을 벗어나는 것으로 영화에선 설정된다.)  

영화에서 보여 주는 혁명의 본모습은 절대로 낭만적이지 않다.
애송이 혁명가들은 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부모를 속여가며 돈을 뜯어내야 했고,
적의 목숨을 끊기 위해선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 칼을 찔러대야 했다.
자신이 마음에 둔 여자를 다른 사람이 범하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이 장관(왕조위역)과의 결전을 앞두고 리더였던 광위민이 자신을 만지려 하자 왕치아즈는 '3년전에 그러지 그랬냐?'며 따진다.
낭만적 혁명가들은 괴롭다.
그들이 추구하는 열정은 냉혹한 외부 세계에선 무력하고, 그러한 외부 세계와 싸우면서 적을 닮는 그들은 자기 내부의 열정을 희생시킨다.
광위민이 왕치아즈와 애매한 눈빛과 마음 이상을 주고 받지 못한 것이 그 때문이다.  
경계란 그 자신에 대한 경계를 포함한다.

단연 압권은 보석 반지를 받은 왕치아즈가 자신의 정체를 폭로하는 장면이다.
탕웨이의 표정 연기에 반했다. 그녀의 대사는 극히 짧다.
번역된 대사가 "가요" 그리고 "어서('빨리'였나? 하여튼 뭐 그런...)" 두 마디였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 고농축의 표정이 엄청난 말들을 빛의 속도로 내뱉는다.
내가 누구(사회적 정체)인지, 나와 당신은 궁극적으로 어떤 관계인지, 당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나는 뭘 원하는지...
여자의 전언을 역시 빛의 속도로 해석한 '민족의 역적'은 생존 본능의 요구대로, 혼자 살겠다고 구차할 정도로 몸을 굴려가며 여자를 떠나간다.
그 장면은 정말이지, 하나도 '안 낭만적'이다.
무엇를 기대했던가?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여지없이 실소한다.
낭만을 기대하는 자들에게 그 장면은 극적 반전이다.
그때 처연히 남은 여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나는 왜 또 뭐든 그녀가 '생각'했을 거라고 단정하는 걸까?
아무 생각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자기가 죽더라도 일단은 새끼를 낳고 마는 자연계의 많은 동물들처럼 그녀는 그저 본능대로 움직인 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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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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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미미, 민우, 뮤즈의 ㅁ

민우가 출판사 사장을 만나는 장면, 애인 은혜의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은 변형되어 3번이나 반복된다.

영화 전체에 걸쳐서 장면의 반복은 매우 많다.

대략의 삶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형될뿐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경험하며, 같은 존재로서 살 뿐이다.

단지 기억, 사랑이 있어 그 사람을 독보적이게 한다.

첫사랑은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한다.


이명세의 이번 영화는 91년도 나왔던 '첫사랑'의 연작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형식은 매우 다르지만(첫사랑은 연극을 연상시켰다면, 엠은 음악이 흐르는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제재, 주제는 매우 닮아 있다.

시간과 존재, 그 때때로의 반목과 (사랑을 통한) 결합

이런 제목을 붙여서...


나는 무언가?

나는 나의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나는 상당부분 관계에 의해서 존재한다.

타인의 무엇으로서 존재한다.

타인이 갖는 어떤 이미지로서 존재한다.

타인의 어떤 이미지였던 스스로에 대한 회상으로 존재한다.

첫사랑은 이미지의 염료이다.

그 추억의 통에 들어갔다 나오면 우리는 어떤 이미지로 흠뻑 젖게 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가는 이 영화는 어찌 보면 숨어있던 자신의 정체를 찾아가는 미스테리 같기도 하다.
얼핏 '시민 케인'이 떠오른다. 물론 시민 케인은 스스로 그걸 찾는 것은 아니지만...

이명세는 친절하지 않았지만,

기억으로서의 미미가 잠이 든 첫사랑을 잠이 든 것도 아니고, 잠이 안 든 것도 아닌, 자신의 활동 공간, 꿈 속으로 이끌기 위해 부질없이 민우의 팔을 연신 잡아채는 장면을 보며

이명세가 천재라는 생각을 했다.

천재란, 범상치 않은 강도의 열정이 지속되도록 허용된 사람들이라고 난 생각한다.  


어떻게 저런 경험을 잡아 냈는가...

어떻게 저런 장면으로 만들어 냈는가...


어쨌든 이명세는 자신만의 느낌, 각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허용되었고,

사람들은 많든 적든 미친 짓은 아니라며 그의 표현에 주목한다.

이명세는 박제가 된 천재는 아니다.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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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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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지층을 뒤엎는 대단한 지각 변동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씨가 밖으로 올라와 있다.
그것도 껍질이 없이 드러난 부드러운 살 위에...
얼핏 무력해 보이지만
그 씨는 섬유질과 같은 것으로 내부와 이어져 있다.
딸기는
다음 세대를 품안에 가둬 세상과 차단하지 않으며
자기 살에 단단히 박아 놓고
자기에게 허락되는 한 운명을 같이한다.

무방비의,
고운 짐승 같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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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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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도 2%가 부족한지 먹다 남긴 2%에 잔뜩 꼬여 있길래 모두 죽여 버렸다.
난 스카치테이프로 슬쩍 누르는 끈끈이 방식을 쓴다.
아마도 대부분 테이프에 붙은 채로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잔인한 짓이다.)

그리고 딸기를 먹었다.
난 딸기를 먹을 때 딸기씨를 깨물어서 나오는 톡톡 소리를 즐긴다.
스스로 그 소리를 듣다가 얼마전에 '세상에 이런일이'에서 나왔다는 엽기적인 여자, 개미를 산 채로 씹어 먹으면서 그때 나는 톡톡 소리를 좋아한다는 여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딸기씨를 터뜨리면서 난 갑자기 그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개미인 것처럼 느껴졌다.
또는 내가 잡아대는 개미가 여기저기 살아서 기어다니는 딸기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난 개미를 씹어 먹고,
스카치테이프에는 딸기씨가 붙어 있고,
난 이 지구에 박혀 있고...

2%를 마시고 나서 양치질을 따로 안했었는데, 해야 하나 보다.
개미가 덤빈다는 건 2% 중 많은 부분이 설탕이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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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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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베이 시민처럼
정지된 개미,
그의 잘못은 '생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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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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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날기가 힘들 것 같다.
윗날개가 너무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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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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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그 사이에선 아기가 태어난다.
내내 방치해 두던 아이를 돌아볼 때가 있다.
큰이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의 큰 여동생 되시는 분을 우리 집안에선 그렇게 불렀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아이는 그 명칭을 찾아봤는데 잘못된 것이더라고 얘기했다.
큰이모할머니와 나와의 아이는 언제 생겨난 것일까?
잘못된 명칭이 시작되었을 때, 내가 태어났을 때, 나의 엄마가 태어났을 때, 큰이모할머니가 태어났을 때, 나의 외할머니가 태어났을 때, 큰이모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어머니가 태어났을 때로부터...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으나 역시 내게 흔적을 남겼을 그 아이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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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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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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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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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스쳐 흔적을 남기는 일...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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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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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사랑했던 것들과
사랑한 적이 없는 것들의 뼈가 박혀 빛난다.
반짝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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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6명, 오늘은12명
takeshimajapan seadokdo